to tell the truth
함정들 · 12 / 15

기준을 빼앗기다

카테고리를 처음 정의한 브랜드가 시장가치의 76%를 가져간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
  • 경쟁사 분석에 몰두할수록 왜 전략은 오히려 약해지는가?
  • 경쟁의 함정은 정확히 무엇을 빼앗는가?
  • 카테고리 킹은 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는가?
  • Play Bigger가 말하는 76 대 24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런 분께경쟁사 분석 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마케터·브랜드 전략 담당자

경쟁을 이기려 할수록, 경쟁이 정한 기준 안에 갇힌다. 회의실 벽을 채운 건 경쟁사 자료였고, 정작 소비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벽면 전체가 경쟁사 분석으로 덮여 있다. A 브랜드의 라인업, B 브랜드의 가격표, C 브랜드의 최근 캠페인, D 브랜드의 유통 현황. 전략 기획 팀이 3주를 쏟아 만든 결과물이다. 슬라이드마다 로고가 다르고 색이 다르지만, 어느 장 하나에도 우리 소비자의 얼굴은 없다.

팀장이 묻는다. "경쟁사들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논의가 이어진다. "A가 가격을 낮췄으니 우리도 검토해야 합니다." "B가 이 기능을 넣었는데 우리는 아직 없습니다." "C 캠페인이 화제인데, 우리 건 너무 조용한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틀린 말은 없다. 두 시간이 지나고 액션 아이템이 정리된다. 가격 재검토, 기능 로드맵 업데이트, 캠페인 방향 재논의. 회의실을 나서는 팀원들의 얼굴엔 일을 해냈다는 표정이 있다.

이 회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한 것은 무엇인가. 소비자가 아니다. 우리 브랜드의 강점도 아니다. 경쟁사다. 발언의 시작도 경쟁사였고, 결론도 경쟁사였다. 팀이 3주를 들여 분석한 대상도 경쟁사의 움직임이었고, 두 시간을 들여 도출한 결론도 경쟁사에 대한 대응이었다. 회의록 어디를 뒤져도 "우리 소비자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문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6개월 뒤, 같은 팀이 다시 모인다. 지난 회의의 액션 아이템을 점검한다. 가격은 일부 조정됐다. 몇 가지 기능이 로드맵에 추가됐다. 캠페인 방향도 수정됐다. 그런데 시장 점유율은 거의 그대로다. 팀장이 다시 묻는다. "경쟁사들은 그동안 어떻게 움직였나요?" 새 자료가 준비되고, 같은 두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액션 아이템이 다시 나온다.

이 회의가 매번 같은 결론에 도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출발점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사에서 시작하면, 경쟁사로 끝난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경쟁사를 쫓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경쟁의 함정이다.

경쟁의 함정이란 무엇인가

The trap of playing someone else's game

경쟁을 분석하는 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경쟁 환경을 모르고 전략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맹목적이다. 경쟁사 분석은 마케팅 교과서 어디에나 나오는 기본 프로세스이고, 지금도 필요하다. 문제는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순간 찾아온다. 경쟁사를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되고, 경쟁사가 세운 기준이 우리 기준이 되고, 경쟁사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이 전략 그 자체가 된다. 이 상태에서 브랜드는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대신 따라가기 시작한다.

이 함정은 세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첫째, **비교 기준을 빼앗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고를 때 쓰는 기준이 있다. 무엇을 잣대로 이 브랜드와 저 브랜드를 견주는가. 이 기준을 누가 만드느냐가 결과를 상당 부분 결정한다. 경쟁사 분석에 몰두하는 브랜드는 대개 경쟁사가 이미 만들어둔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기준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 한다. 그런데 기존 기준에서 더 잘하는 것으로는 기존 1위를 넘어서기 어렵다. 1위는 그 기준을 처음부터, 오랫동안,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해 놓았기 때문이다. 남의 운동장에서, 남이 정한 채점표로 겨루는 셈이다.

둘째, **전략이 반응적이 된다.** 경쟁사가 기능을 추가하면 우리도 검토해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가격을 낮추면 우리도 고민해야 한다. 캠페인이 화제가 되면 우리 것도 다시 봐야 한다. 이 반응들은 하나하나 놓고 보면 합리적이다. 그런데 누적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브랜드가 다음 분기에 무엇을 할지가, 사실상 우리가 아니라 경쟁사의 캘린더에 의해 결정되는 상태가 된다. 남는 건 전략이 아니라 전술적 대응의 연속이다. 로드맵을 열어보면 절반 이상의 항목 옆에 괄호로 경쟁사 이름이 적혀 있다. 우리가 왜 이걸 만드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소비자가 아니라 저쪽 브랜드다.

셋째, **소비자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경쟁사 분석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수록, 소비자의 실제 행동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데 쓸 자원은 줄어든다. "경쟁사 대비 우리는 어떤가"라는 질문이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슬그머니 밀어낸다. 겉보기엔 둘 다 전략적인 질문 같지만, 이 두 질문은 자주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이 세 층위는 따로 놀지 않는다. 비교 기준을 빼앗기면 그 기준 안에서 반응할 수밖에 없고, 반응에 몰두하는 동안 소비자를 들여다볼 여유는 자연히 줄어든다. 하나가 다음 것을 부르는 구조다. 그래서 경쟁의 함정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매 분기 합리적으로 보였던 결정들이 조용히 방향을 정해놓은 뒤에야 알아챈다.

경쟁은 패자들의 게임이다.
Competition is a game for losers.
— Peter Thiel

과장된 표현이지만 핵심은 정확하다. 기존 경쟁 구도 안에서 싸우는 것은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규칙 안에서 플레이하는 것이다. 규칙을 만든 쪽이 언제나 가장 유리하다. 후발주자가 그 규칙 안에서 이기려면 압도적으로 더 잘해야 하지만, 규칙 자체를 바꿔버리면 그 기준은 통째로 무의미해진다.

이 함정이 유독 끈질긴 이유는,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개별 결정 하나하나가 전부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경쟁사가 새 기능을 넣었을 때 우리도 검토하는 것, 경쟁사가 가격을 낮췄을 때 대응을 논의하는 것, 경쟁사 캠페인이 화제가 됐을 때 우리 것을 재검토하는 것 — 어느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걸 안 하는 팀이 태만해 보인다. 그런데 이 합리적인 반응들이 누적되면,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브랜드는 구조적으로 경쟁사의 그림자를 따라 걷고 있다.

여기에 조직 구조의 문제가 하나 더 겹친다. "경쟁사 대비 우리는 어떤가"는 답하기 쉽고 보고서로 만들기도 쉽다. 자료는 이미 존재하고, 표로 정리하면 그럴듯한 슬라이드가 된다. 반면 "소비자가 아직 언어화하지 못한 욕구는 무엇인가"는 답하기 어렵고 자료로 정리하기도 까다롭다. 해석이 필요하고, 확신을 갖기도 어렵다. 보고 가능한 것이 우선시되는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회의실 벽을 채우는 건 언제나 경쟁사 자료가 되고 소비자의 욕구는 배경 소음으로 밀려난다. 경쟁의 함정이 한 사람의 판단 착오가 아니라 조직의 구조적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하나 있다. 이 함정에 빠지는 팀이 무지해서 빠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경쟁사 분석 회의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고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을 이미 알고 있다. 신입 시절부터 들어온 말이다. 그런데도 매 분기 같은 회의가 반복된다. 이유는 앎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인센티브는 분기 실적으로 매겨지고, 분기 실적은 경쟁사 대비 지표로 보고되고, 그 보고서를 준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경쟁사 자료를 모으는 것이다. 이 회로 안에서는 아무리 똑똑한 팀도 같은 결론에 도착한다. 함정을 벗어나려면 개인의 통찰보다 이 회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카테고리 킹은 왜 다 가져가는가

The category king takes it all

경쟁의 함정을 이해하려면, 비교 기준을 쥔 쪽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유리한지부터 봐야 한다. 그 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개념이 '카테고리 킹(Category King)'이다.

특정 카테고리를 처음 정의한 브랜드가 그 카테고리의 왕이 되고, 카테고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장분의 대부분을 가져간다는 개념이다. Al Ramadan 외 저자들이 『Play Bigger』(2016)에서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카테고리를 처음 정의한 브랜드는 그 카테고리 전체 시장가치의 약 76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머지 모든 브랜드가 24퍼센트를 나눠 갖는다. 2위, 3위, 4위가 아무리 애써도 합쳐서 4분의 1 남짓이라는 뜻이다.

76 대 24. 이 격차는 단순히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소비자 심리의 구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카테고리 하나를 통째로 기억하는 대신, 그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브랜드 하나로 압축해서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물류를 떠올리면 특정 브랜드 하나가 먼저 떠오르고, 검색을 떠올리면 특정 브랜드 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에너지를 보충하고 싶을 때, 전기차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선택지를 놓고 저울질하기 전에, 뇌는 이미 그 카테고리와 한 몸처럼 붙어 있는 이름 하나를 먼저 꺼낸다.

이 압축은 게으름이 아니라 효율이다. 매번 시장 전체를 다시 검토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뇌는 카테고리마다 대표 하나를 캐시처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이 캐시에 한번 이름을 올린 브랜드는, 다음번에도 가장 먼저 호출된다. 반대로 캐시에 없는 브랜드는 매번 처음부터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같은 광고비를 써도 도달하는 지점이 다른 이유다.

이 '대표 브랜드'가 되면 이점이 두 가지 생긴다. 하나는, 소비자가 그 욕구를 느끼는 순간 가장 먼저 고려된다는 것 — 고려집합에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브랜드들이 그 카테고리에 뒤늦게 들어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비교의 기준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거 있잖아, 그거랑 비슷한 거"라는 말에서 '그거'의 자리를 차지하는 쪽이 대표 브랜드다.

이 두 번째 이점이 특히 무섭다. 후발 브랜드가 그 카테고리 안에서 경쟁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대표 브랜드의 위상은 더 단단해진다. 비교당할 때마다 기준점으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새로 진입한 브랜드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내놓아도, 소비자의 머릿속 문장은 "이거, 그거보다 나은가"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거'라는 단어 자리를 이미 차지한 브랜드는, 경쟁자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언급 빈도가 늘고 지위가 굳는다. 경쟁이 카테고리 킹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이유다.

그래서 스펙이나 가격에서 종종 뒤처지는 제품을 파는 대표 브랜드가, 그럼에도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 광경이 낯설지 않다. 도전자는 이 상황을 "우리가 아직 덜 알려져서"라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인지도의 부족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다. 도전자에게는 아직 자신만의 채점표가 없다. 상대의 채점표를 빌려 쓰는 한, 아무리 점수를 잘 받아도 채점표 주인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다.

카테고리를 정의하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략이다.

이 문장을 뒤집으면 경쟁의 함정이 왜 위험한지가 더 분명해진다. '이기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기준 안에서 남보다 잘하는 일이다. 상한선이 정해진 게임이다. '정의하는 것'은 애초에 그 기준 자체를 소유하는 일이다. 상한선을 설계하는 게임이다. 회의실에서 경쟁사 자료를 펼쳐놓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까"를 논의하는 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대부분 전자의 게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전자의 게임에서는, 기준을 먼저 만든 쪽이 이미 76을 손에 쥔 채 시작한다. 나머지는 24를 두고 서로 싸운다.

앞서 말한 첫 번째 층위 — 비교 기준을 빼앗긴다는 것 — 이 바로 이 숫자로 드러난다. 76 대 24는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라, 기준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실제로 갈리는 몫이다. 경쟁사 분석 회의가 매번 "저들의 기준에서 우리는 어떤가"로 흐를 때, 팀은 사실 24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에만 참가 신청을 하고 있는 셈이다. 76이 걸린 질문 — 이 기준을 누가 처음 만들었고, 왜 지금도 그 기준이어야 하는가 — 은 애초에 회의 안건에 오르지도 않는다.

경쟁사 분석이 나쁜 도구라서가 아니다. 그것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의 범위가 애초에 좁기 때문이다. 경쟁사 분석은 "이 기준 안에서 지금 누가 더 잘하고 있는가"에는 답을 준다. 그러나 "이 기준을 애초에 누가 만들었는가", "이 기준은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유지되어야 하는가"에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 질문 자체가 분석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회의를 거듭할수록, 팀은 24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만 점점 정교해진다. 더 세밀하게, 더 열심히, 그러나 여전히 같은 24 안에서.

이 24 안의 정교함은 눈에 잘 띈다. 분기마다 개선된 지표, 촘촘해진 로드맵, 정교해진 캠페인 타기팅 — 보고서로 만들면 그럴듯하다. 문제는 이 모든 정교함을 합쳐도 76을 넘볼 수 없다는 데 있다. 24 안에서의 1등과 76을 쥔 자리는 애초에 다른 게임이다. 팀이 착각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24 안에서 잘하고 있다는 감각이, 게임 전체에서 이기고 있다는 감각으로 슬며시 번역된다.

다시 회의실로 돌아가 보자. 3주에 걸쳐 경쟁사 자료를 준비한 그 팀은, 사실 최선을 다했다. 게으르지 않았고, 무능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노력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벽을 채운 자료 어디에도 "이 카테고리의 기준을 지금 누가 쥐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없었다. 있었던 건 오직 "저들이 무엇을 했는가"뿐이었다. 76과 24를 가르는 것은 결국 그 질문을 던졌는가, 던지지 않았는가다.

지금 당신의 카테고리 안에서, 비교 기준을 실제로 쥐고 있는 건 누구인가. 그 기준은 언제, 누가 처음 만들었는가. 이 두 질문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답은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경쟁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누가 어떻게 처음 만드는지는, 다음 질문으로 남겨둔다.

The brand that owns the standard doesn't need to win the arg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