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tell the truth
함정들 · 13 / 15

닮아가는 공식

경쟁사를 따라 할수록 브랜드는 서로 닮아간다 — 그 끝에는 가격만 남는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
  • 벤치마킹은 왜 브랜드를 서로 비슷하게 만드는가?
  • 항공사, 패스트푸드, 은행이 유독 다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 동질화된 시장에서 경쟁은 왜 결국 가격 싸움으로 끝나는가?
  • 벤치마킹과 시장 관찰은 어떻게 다른가?
이런 분께경쟁사 벤치마킹을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는 마케터·전략 담당자

경쟁사를 열심히 따라 할수록, 브랜드는 경쟁사에게서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닮아간다.

화면에는 표가 하나 떠 있다. 왼쪽 줄은 우리 브랜드, 오른쪽 세 줄은 경쟁사 A, B, C. 그 아래로 기능 목록이 줄줄이 이어진다. 배송 추적, 등급별 리워드, 간편결제, 다크모드. 칸마다 O와 X가 채워지고, 담당자가 X가 몰린 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한다. "여기, 우리만 없네요." 회의실 공기가 조금 무거워진다. 다음 분기 로드맵의 첫 줄이 그 자리에서 정해진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어느 회사, 어느 카테고리든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한 표가 돌아다닌다. 벤치마킹은 마케팅 현장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도구다. 경쟁사가 무엇을 잘하는지 파악하고, 그걸 참고해 우리 전략을 개선한다.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잘하는 것을 배우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 논리를 시장의 모든 브랜드가 동시에 실행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A사를 벤치마킹하는 동안, A사는 B사를, B사는 다시 우리를 벤치마킹한다. 각자 각자의 방식으로 '잘하는 것'을 향해 조금씩 움직인다. 그런데 그 '잘하는 것'의 기준이 대개 서로에게서 온다. 방향이 겹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이 표를 만든 어느 팀도 "우리, 경쟁사와 비슷해지자"고 결정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모두가 '더 나아지자', '경쟁사보다 앞서자'는 목표로 이 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 하나같이 '경쟁사를 보고 배우자'였을 때, 결과는 각자의 의도와 정반대로 나타난다. 저마다 앞서려고 뛰었는데, 결승선에서 보면 나란히 서 있는 것이다.

수렴진화, 시장의 버전

Convergent evolution, market edition

진화생물학에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라는 개념이 있다. 계통이 전혀 다른 생물이 같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비슷한 형태로 수렴하는 현상이다. 상어와 돌고래가 그렇다. 하나는 어류, 하나는 포유류다. 갈라진 지 수억 년이 지난 계통인데도 둘 다 바다라는 같은 환경에서 헤엄쳐야 했기에, 결국 비슷한 유선형 몸을 갖게 됐다. 지느러미 위치도, 호흡하는 방식도 전혀 다른 두 생물인데, 물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실루엣만 보면 언뜻 구분이 가지 않는다.

시장의 브랜드들도 다르지 않다. 같은 소비자, 같은 채널, 같은 성과 지표 아래서 서로를 벤치마킹하며 경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형태로 수렴한다. 이것이 벤치마킹의 역설이다. 경쟁사의 강점을 분석하고 참고할수록, 그 강점을 향해 움직이게 되고, 그 움직임이 오래 누적되면 카테고리 안의 모든 브랜드가 서로 닮아간다. 차별화하려고 시작한 일이 동질화로 끝난다.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 생물의 수렴진화는 막을 수 없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상어에게 '유선형이 아닌 몸을 선택할 자유'는 애초에 없다. 반면 브랜드의 수렴은 생물학적 필연이 아니다. 그것은 '경쟁사를 따라간다'는 선택이 무수히 누적된 결과다. 필연이 아니라 선택의 합이라면, 의식적으로 다른 방향을 고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 선택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매 순간의 결정이 너무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저긴 있는데 우리는 없다"는 말의 무게

The asymmetry behind sameness

동질화가 진행되는 데는 심리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경쟁사가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상당한 내부 압박을 견뎌야 한다. 회의실에서 "경쟁사는 이 기능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는 말이 나오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비대칭에 있다.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다. "경쟁사도 하고 있으니까"로 충분하다. 없어도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소비자 조사도, 논리도, 확신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쉬운 쪽과 어려운 쪽이 회의실에서 맞붙으면, 대개 쉬운 쪽이 이긴다. 그래서 벤치마킹을 근거로 한 기능 추가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속된다.

이 비대칭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벤치마킹 표는 보고하기 쉽다. 칸마다 O와 X가 채워져 있으니, 한눈에 읽히고 그대로 슬라이드가 된다. "우리만 없다"는 한 줄은 설득력이 강하다. 반면 "이 기능이 정말 우리 소비자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그런 표가 없다. 답을 구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결과도 명쾌하지 않다. 회의실에서 명쾌한 쪽과 불명확한 쪽이 경쟁하면, 명쾌한 쪽이 로드맵을 차지한다. 그렇게 채워진 기능은 하나같이 경쟁사의 표에서 왔다.

벤치마킹은 경쟁사를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경쟁사를 닮아가는 방법이다.
Benchmarking doesn't make you beat your competitor. It makes you resemble them.

각각의 결정은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번 기능 하나, 이번 혜택 하나만 놓고 보면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이 수십 번 쌓이면, 브랜드는 어느새 경쟁사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누구도 "우리, 저 브랜드처럼 되자"고 말한 적이 없는데도. 책임을 물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이 함정의 특징이다. 표를 만든 사람도, X 칸을 지적한 사람도, 기능을 승인한 사람도 각자 자기 몫만큼만 합리적이었다.

왜 어느 브랜드도 먼저 벤치마킹을 멈추지 못하는가?

Why Can No Single Brand Opt Out First?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이 흐름을 알아챈 팀이 "우리는 이제 벤치마킹을 멈추겠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논리적으로는 맞는 결정처럼 보인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선언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만 멈추면, 나만 뒤처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질화는 모두가 함께 만든 결과이지만, 그 안에서 개별 브랜드가 느끼는 위험은 비대칭적이다. 경쟁사가 새 기능을 넣고 우리가 넣지 않으면, 그 격차는 즉시 눈에 띈다. 반대로 경쟁사를 따라가지 않기로 한 결정이 옳았는지는 한참 뒤에야, 그것도 애매하게 확인된다. 눈에 보이는 손해와 나중에야 보이는 이득이 저울 위에 함께 놓이면, 대개 눈에 보이는 쪽이 이긴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는 아무도 먼저 손을 떼지 못한다. 모두가 손을 떼야 이득인 걸 알면서도, 누구도 먼저 떼지 않는 구조다.

이것이 벤치마킹의 역설을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만드는 지점이다. 어느 한 팀, 어느 한 담당자가 조금 더 현명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함정이 아니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전체로 보면 아무도 원하지 않은 풍경을 만든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 팀이 좀 더 과감했어야 했다"고 반성하는 것은 진단을 잘못 짚은 것이다. 문제는 용기의 부족이 아니라, 혼자 멈추는 것이 구조적으로 손해로 계산되는 게임의 규칙이다.

하늘 위에서도, 계산대 앞에서도

Why every airline feels the same

이 패턴은 성숙한 카테고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항공사들을 보자. 서로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면서, 비슷한 좌석 구성, 비슷한 기내 서비스, 비슷한 멤버십 프로그램을 갖게 됐다. 어느 항공사를 타도 마일리지 등급이 있고, 기내식 순서가 비슷하고, 좌석 간격도 큰 차이가 없다. 눈을 감고 기내 안내 방송만 들으면, 어느 항공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

패스트푸드 체인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메뉴를 벤치마킹하면서 비슷한 버거, 비슷한 치킨, 비슷한 사이드 메뉴를 내놓는다. 신메뉴가 하나 나오면 몇 달 안에 비슷한 구성의 메뉴가 다른 브랜드 매장에도 걸린다. 은행 앱을 열어봐도 다르지 않다. 서로의 앱을 벤치마킹한 결과, 비슷한 UI, 비슷한 기능, 비슷한 혜택 구조가 반복된다. 어느 은행 앱이든 로그인 화면과 메뉴 배치, 이체 절차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앱 아이콘을 가리고 화면만 보여주면, 어느 은행인지 맞히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 세 업종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오래되고, 경쟁이 치열하고, 서로를 면밀히 관찰하는 습관이 뿌리내린 곳이다. 벤치마킹을 가장 성실하게 실천한 산업일수록, 역설적으로 브랜드 간 차이가 가장 흐릿한 산업이 됐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열심히 한 방식이 전부 서로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동질화가 끝나는 자리

Where sameness always ends

동질화가 어느 지점을 넘으면, 소비자는 브랜드 간 의미 있는 차이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좌석도, 메뉴도, 앱 화면도 비슷하다면 무엇으로 고르나. 남는 기준은 하나뿐이다. 가격.

가격 경쟁이 시작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호다. 경쟁의 축이 이미 가격으로 좁혀졌다는, 그리고 가격 말고는 브랜드가 내세울 게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문제는 가격 경쟁에 승자가 없다는 데 있다. 누가 앞서든, 모두가 함께 마진을 잃는다. 서로 닮아가려고 들인 노력의 청구서가, 결국 다 같이 나눠 내는 가격 할인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 지점에서 벌어진다. 가격 경쟁이 시작되면, 팀은 다시 경쟁사를 벤치마킹한다. 경쟁사가 할인을 얼마나 하는지, 프로모션 주기가 어떤지를 표로 만든다. 동질화를 만든 바로 그 습관이, 동질화의 결과인 가격전쟁 안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도구로, 함정을 만든 도구를 다시 꺼내 드는 셈이다.

이 순환이 왜 끊기 어려운지는 이미 앞에서 다뤘다. 가격을 낮추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보다, 낮춰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언제나 더 쉽다. "경쟁사가 할인 중이니까"는 즉각적인 설득력을 갖는다. "장기적으로 마진을 지키는 게 낫다"는 답은 다음 분기 실적표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그래서 가격 경쟁은 한번 시작되면 스스로 멈추는 경우가 드물다. 마진이 바닥에 닿거나, 누군가 견디지 못하고 카테고리를 떠날 때까지 이어진다.

어제의 기준으로 내일을 짓는 일

Designing tomorrow with yesterday's map

벤치마킹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벤치마킹은 본질적으로 과거를 보는 일이다. 경쟁사 분석은 경쟁사가 '이미 한 것'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그것을 근거로 우리의 미래 전략을 세우면, 그 미래는 결국 현재의 연장선 안에서 설계된다. 시장이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서 이것은 늘 한 발 늦는 전략이 된다. 경쟁사가 이미 한 일을 더 잘하려는 전략은, 경쟁사가 아직 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는 전략보다 언제나 후발주자일 수밖에 없다.

앞서 본 그 표를 다시 떠올려보자. 배송 추적, 리워드, 간편결제, 다크모드 — 이 항목들의 공통점은 전부 '이미 누군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표에는 아직 아무도 만들지 않은 항목을 위한 빈칸이 없다. 벤치마킹 표는 구조적으로 과거만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그 그릇 안에서 아무리 빈칸을 열심히 채워도, 미래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관찰과 벤치마킹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려고 지켜보는 것은 관찰이다. 경쟁사의 기준에서 우리 위치를 재고, 그 기준을 따라잡으려는 것은 벤치마킹이다. 관찰은 통찰을 준다. 벤치마킹은 경쟁사가 만든 틀 안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시장을 지켜보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다만 그 지켜봄이 '따라잡기'로 바뀌는 순간, 거기서부터 동질화가 시작된다.

두 단어는 겉모습이 비슷해서 더 헷갈린다. 회의 시간도 같고, 준비하는 자료도 비슷하고, 심지어 발표자도 같은 사람일 때가 많다. 차이는 질문 하나에서 갈린다.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를 묻는 것과 "저들만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것. 앞의 질문은 우리를 열어두고, 뒤의 질문은 우리를 저들의 좌표 안에 가둔다. 같은 시간, 같은 자료를 놓고도 팀은 둘 중 하나의 회의를 하고 있다.

두 회의는 겉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회의록만 놓고 보면 둘 다 "시장 동향 점검"이라는 같은 제목을 달고 있을 것이다. 구분은 회의가 끝난 뒤에야 드러난다. 관찰로 끝난 회의는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벤치마킹으로 끝난 회의는 새로운 할 일 목록을 남긴다. 할 일 목록이 쌓일수록 보람은 있지만, 그 보람의 방향은 대개 저쪽을 향해 있다.

동질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이번 분기의 기능 하나, 다음 분기의 혜택 하나가 각각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쌓여, 몇 년 뒤에는 카테고리 전체가 서로를 복사한 결과물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모두가 발견하는 건 새로운 시장이 아니라, 마진이 사라진 가격표다.

지금 우리 카테고리의 좌석 간격을, 메뉴판을, 앱 화면을 경쟁사의 것과 나란히 놓아보라. 얼마나 다른가. 그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면,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베끼고 있었다.

처음의 그 표로 돌아가 보자. O와 X로 채워진 칸들. 그 표를 만든 팀을 탓할 수는 없다. 각자의 판단은 그때그때 합리적이었다. 다만 그 표가 매 분기 다시 만들어지는 동안,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이 표에, 아직 아무도 채우지 않은 빈칸이 있는가. 그 빈칸을 찾는 일은 경쟁사의 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오지 않는다.

Follow every competitor closely enough, and you stop being anyone in particul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