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 않고 이기기
- 제로투원 전략이란 무엇인가?
- 서브카테고리 혁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아사히는 왜 기린을 직접 겨냥하지 않았는가?
- 새로운 비교 기준은 언제 진짜로 자리 잡는가?
1위를 이기는 방법은 1위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다. 1위가 정해놓은 게임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다.
전략 회의에서 흔히 나오는 질문은 하나다. "저 브랜드보다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 이 질문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미 하나의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비교의 기준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기준 위에서 점수를 더 따내야 한다는 전제다. 그런데 그 기준을 누가 정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경쟁에서 지는 브랜드들은 대개 같은 실수를 한다. 상대가 이미 만들어놓은 링 위에 스스로 올라간다. 맛으로 붙고, 스펙으로 붙고, 가격으로 붙는다. 그런데 그 링은 애초에 상대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몇 년, 몇십 년에 걸쳐 그 기준에서 이기도록 다듬어놓은 쪽이 이미 있다. 늦게 들어온 쪽이 같은 기준으로 정면 승부를 걸면, 이기는 경우는 드물다. 더 잘해봐야 '조금 나은 2등'이 되는 게 최선이다. 회의실에서는 이런 노력이 성실함으로 칭찬받는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성실함이 순위를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실제로 판을 뒤집는 브랜드들이 하는 일은 다르다. 링을 아예 바꾸거나, 링 안에 새로운 좌표 하나를 그어버린다. 전자를 제로투원이라 부르고, 후자를 서브카테고리 혁신이라 부른다. 이름은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 상대가 강한 기준 위에서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
두 방식 모두 겉으로는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히려 정반대다. 경쟁사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경쟁사를 이기겠다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경쟁사를 무력화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셈이다. 이 역설을 이해하면 왜 '더 열심히 싸우기'가 종종 잘못된 답인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열심히의 부족이 아니라 링 선택의 부재였다.
두 방식의 차이는 규모에 있다. 하나는 링 자체를 없애고, 다른 하나는 같은 링 안에 새 좌표를 긋는다. 전자가 더 근본적이지만 훨씬 드물게 일어나고, 후자가 더 자주 일어나지만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제로투원: 비교 자체를 지우다
피터 틸이 말한 제로투원은 이 원리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0에서 1을 만드는 것과 1에서 N을 만드는 것은 다른 게임이다. 1에서 N은 이미 있는 것을 복제하고 개선하는 일이고, 그 본질은 경쟁이다. 0에서 1은 없던 것을 처음 만드는 일이고, 그 본질은 독점이다. 존재하지 않던 카테고리를 만들면, 애초에 비교할 대상 자체가 없다. 경쟁자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유리하다는 뜻이 아니다. 비교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폰이 그랬다. 이전까지 휴대폰 경쟁의 기준은 배터리 수명, 화면 크기, 통화 품질이었다.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는 이 기준 위에서 오래 다듬어진 강자들이었다. 아이폰은 그 기준 안에서 더 잘하려 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다. 그 순간 기존 비교 기준 전체가 조용히 무의미해졌다. 애플은 경쟁자를 이긴 것이 아니라, 경쟁자들이 서 있던 링 자체를 없앴다. 노키아와 모토로라, 블랙베리가 피처폰 기준에서 아무리 강했어도, 스마트폰이라는 새 링 위에서는 모두가 출발선이 같았다.
레드불도 같은 구조다. 레드불 이전에 음료의 비교 기준은 맛과 당도, 가격, 브랜드 이미지였다. 레드불은 그 목록에 '에너지'라는 항목을 새로 써넣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다. 레드불이 등장하기 전, 소비자에게 에너지 음료를 원하냐고 물었다면 원한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카테고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레드불은 소비자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묻지 않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욕구를 먼저 정의해버렸다. 몬스터, 번, 핫식스는 그 뒤에 레드불이 그어놓은 좌표 안으로 들어온 후발주자들이다. 이들이 아무리 성장해도, '에너지 음료'라는 단어를 처음 발음한 브랜드는 여전히 레드불이다.
경쟁자가 없으면 비교 기준도 없다.No competitor, no comparison.
이 문장이 낯설게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평소 '경쟁'을 전략의 출발점으로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브랜드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들이 이긴 순간은 대개 싸움을 시작한 순간이 아니라 싸움 자체가 필요 없어진 순간이었다.
제로투원의 교훈은 '무조건 새 카테고리를 만들라'는 지시가 아니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게임의 규칙을 누가 만들었는지 먼저 물으라는 것이다. 그 규칙이 우리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애초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남의 규칙인가. 답을 얻기 전에는 이기고 있어도 안심할 수 없다. 이기고 있는 게 아니라, 남이 만든 규칙 안에서 잘 버티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이 문은 자주 열려 있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하는 일은 드물다. 막대한 자원과 시간, 그리고 상당한 운이 함께 필요하다. 대부분의 팀에게는 시도할 예산도, 그 시도가 몇 년간 성과 없이 흘러가도 버틸 인내심도 없다. 아이폰과 레드불이 두고두고 사례로 인용되는 이유도 이 희소성 때문이다. 성공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성공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유명하다. 그래서 제로투원은 이론으로는 매력적이지만, 대부분의 브랜드가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손에 쥐기는 어렵다. 손에 쥘 수 있는 다음 문이 필요하다.
서브카테고리 혁신: 같은 링 안에서 새 좌표를 긋다
카테고리를 통째로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 카테고리 안에서 비교의 축 하나를 새로 놓는 방법이다. 데이비드 아커가 브랜드 전략에서 가장 강력한 움직임 중 하나로 꼽은 것이 바로 이것, 서브카테고리 혁신이다. 시장을 떠나지 않고도 시장의 규칙만 바꾸는 방식이라, 제로투원보다 훨씬 많은 브랜드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문이다.
1987년 일본 맥주 시장을 보자. 기린이 수십 년째 1위였다. 맛, 브랜드 전통, 유통력 — 이 기준으로 정면 승부를 걸면 후발주자에게 승산이 없었다. 기린이 이미 그 기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굳혀놓았기 때문이다. 아사히의 선택은 그 기준에서 더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새 기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드라이(dry)'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마신 후 달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뒷맛. 이것을 '슈퍼드라이'라 이름 붙이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효과는 질문을 바꾸는 데서 나왔다. 소비자의 머릿속 물음이 "어느 맥주가 더 맛있는가"에서 "이 맥주는 드라이한가, 아닌가"로 옮겨갔다. 이 새 질문 안에서 아사히는 정의 그 자체였다. 기린은 선택해야 했다. 드라이 기준을 받아들이면 아사히를 따라가는 것이 되고, 무시하면 새로운 흐름 밖에 남는 것이 됐다. 어느 쪽을 골라도 아사히가 만든 좌표 위에서 움직이는 셈이었다. 받아들이면 뒤늦게 따라온 브랜드로 보이고, 거부하면 시대에 뒤처진 브랜드로 보인다. 1위에게는 둘 다 나쁜 선택이었다. 아사히는 결국 기린을 역전했다. 더 좋은 전통 라거를 만들어서가 아니다. 기린이 1위인 게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구조가 다른 카테고리에서도 반복된다. 다이슨은 선풍기에 '날개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축을 새로 그었다. 그 축에서는 다이슨이 곧 기준이다. 기존 브랜드가 아무리 조용하고 효율적인 날개형 선풍기를 잘 만들어도, 날개 없는 선풍기라는 자리에서는 애초에 경쟁이 성립하지 않는다. 비교당할 상대가 없는 것이다.
테슬라는 자동차에 새 좌표를 그었다. 엔진 출력과 주행감, 내구성 대신 배터리 항속 거리, 충전 인프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비교 기준으로 세웠다. BMW, 메르세데스, 아우디가 뒤늦게 전기차를 내놨을 때, 그들은 이미 테슬라가 정해놓은 기준 위에서 출발해야 했다. 내연기관에서는 수십 년 쌓아온 강자였던 브랜드들이, 전기차 좌표 위에서는 신참이 됐다. 국내에서는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비슷한 길을 갔다. '청정 라거'라는 축을 세우면서, 더 맛있는 맥주가 아니라 '청정한가 아닌가'를 새로운 물음으로 던졌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에 있다. 기존 강자를 정면으로 겨냥하지 않았다. 대신 그 강자가 서 있지 않은 좌표 하나를 새로 그었고, 그 좌표에서는 스스로가 곧 기본값이 됐다. 왜 그럴까. 사람의 머릿속은 카테고리 전체뿐 아니라 그 안의 작은 영역까지도 하나의 이름으로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드라이 맥주'라는 서랍을 열면 아사히 하나만 들어 있고, '날개 없는 선풍기'라는 서랍을 열면 다이슨 하나만 들어 있다. 이 서랍은 한 번 채워지면 좀처럼 다시 열리지 않는다. 이런 발상은 경쟁사 자료를 들여다보는 회의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 회의의 질문은 대개 "저들보다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이고, 그 질문의 결론은 항상 '저쪽이 하는 걸 더 잘하거나 비슷하게 하는 것'으로 수렴한다. 반면 서브카테고리를 찾는 질문은 "아직 아무도 주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다. 출발점이 다른 질문은 도착지도 다르다. 이 질문은 경쟁사 자료가 아니라, 소비자를 오래 들여다본 자리에서만 나온다. 경쟁사 분석 자료는 이미 존재하니 모으기 쉽고, 소비자의 잠재 욕구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찾기 어렵다. 쉬운 쪽에 시간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새 좌표는 언제나 어려운 쪽에서 나온다.
서브카테고리는 언제 진짜로 자리 잡는가
문제는 이 축을 아무나 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새 기준을 던졌는데 소비자가 무시하면, 그건 한 번 스쳐 간 마케팅 문구로 끝난다. 진짜 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이 네 조건은 순서가 아니라 동시성의 문제다. 하나가 강해도 다른 하나가 비면, 소비자는 그 기준을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첫째, 그 기준이 소비자의 실제 욕구에 붙어 있어야 한다. '드라이'가 통한 것은 그것이 실제 마시는 경험과 연결됐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에 시원하게 마시고 깔끔하게 끝나는 맥주를 원하는 마음은 이미 있었다. 아사히는 그 마음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없던 욕구를 억지로 지어낸 게 아니라, 말이 없던 욕구에 말을 준 것이다.
둘째, 그 기준이 쉬운 말로 담겨야 한다. '드라이', '에너지', '전기차', '날개 없는' — 전부 소비자가 그대로 옮겨 말할 수 있는 언어다. "나는 드라이한 맥주가 좋아"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순간, 그 언어를 소유한 브랜드가 자동으로 유리해진다. 반대로 어렵고 기술적인 표현은 아무도 일상 대화에서 옮겨 쓰지 않는다. '제로(0)칼로리'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칼로리 감소 처리를 거친 저에너지 음료'라는 정확한 설명보다, '제로'라는 한 단어가 훨씬 멀리 간다. 서브카테고리 혁신은 제품 혁신인 동시에 언어 혁신이다. 제품만 바꾸고 언어를 만들지 않으면, 소비자의 비교 기준은 결국 바뀌지 않는다.
셋째,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래야 한다. 아사히가 드라이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평범한 단맛 맥주였다면, 그 기준은 첫 잔에서 무너졌을 것이다. 이름만 새롭고 경험은 그대로인 서브카테고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소비자는 광고보다 혀를 믿는다.
넷째, 시점이 맞아야 한다. 너무 이르면 소비자가 그 기준의 의미를 못 알아채고, 너무 늦으면 이미 다른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한 뒤다. 아사히의 드라이는 더 가볍고 깔끔한 것을 원하는 흐름이 막 떠오르던 1980년대 후반과 정확히 맞물렸다. 같은 개념이라도 5년 일렀다면 소비자는 무슨 말인지 되물었을 것이고, 5년 늦었다면 다른 브랜드가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서브카테고리 혁신은 이름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던 욕구에 처음으로 언어를 주는 일이다.
이 네 조건을 뒤집으면 실패하는 이유도 보인다. 욕구와 연결되지 않은 기준은 캠페인이 끝나면 함께 잊힌다. 지나치게 전문적인 언어는 소비자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실제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첫 경험에서 곧바로 들통난다.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리 좋은 언어도 이미 임자가 있다. 넷 중 하나만 빠져도 새 좌표는 그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고, 동시에 그만큼 해낸 브랜드가 오래 버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준은 한 번 자리 잡으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중에 등장한 브랜드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내놔도, 그 좌표를 처음 그은 브랜드의 자리를 빼앗기는 쉽지 않다.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드라이'는 지금도 아사히를 먼저 불러온다. 좌표를 긋는 일이 그만큼 무겁다는 뜻이고, 그래서 먼저 긋는 쪽이 오래 이긴다.
두 전략을 가르는 것은 자원이 아니라 질문이다. 제로투원은 '이 카테고리 자체가 왜 있어야 하는가'를 묻고, 서브카테고리 혁신은 '이 카테고리 안에서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두 질문 모두 경쟁사에게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두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링은 누가 그렸는가. 그 답이 '경쟁사'라면, 아무리 잘 싸워도 결국 경쟁사의 승리에 복무하는 셈이다. 링을 통째로 없앨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안에 우리 이름으로 된 좌표 하나는 그어야 한다. 기린을 이기려 하지 않았던 아사히처럼.
The fastest way to lose a fight is to walk into someone else's 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