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놓지 않았다
- 코닥은 디지털카메라의 위협을 몰랐는가, 알고도 대응하지 못했는가?
- 블록버스터는 왜 넷플릭스를 5천만 달러에 살 기회를 거절했는가?
-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를 왜 놓쳤는가?
- 위협을 인지하는 것과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왜 다른가?
셋 다 몰랐던 게 아니다. 알면서도, 잘 되고 있는 쪽을 놓지 못했다.
앞서 다룬 성공의 함정에는 오해가 하나 따라붙는다. 조직이 둔해서, 혹은 시야가 좁아서 위협을 못 본다는 오해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 위협은 대개 정확히 보인다. 보고서로도 남고, 회의 안건으로도 오르고, 심지어 담당 임원의 입에서도 나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위협을 본 조직이 그 위협에 맞서 움직이는 대신, 지금 잘 되고 있는 사업을 더 단단히 지키는 쪽을 고른다.
이 선택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합리성의 증거에 가깝다. 지금 이익을 내는 사업이 있다. 그 사업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업이 조직의 예산과 평판과 자존심을 떠받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업을 스스로 위협해도 괜찮다"는 결정은 매 순간 손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조직은 위협을 인지한 바로 그 순간, 위협에 대응하는 대신 성공을 방어하는 쪽으로 먼저 움직인다. 코닥과 블록버스터와 노키아는 이 패턴을 각기 다른 산업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증명한 사례들이다.
세 회사를 함께 놓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세 회사는 업종도 다르고, 위협의 형태도 다르고, 몰락에 이른 속도도 달랐다. 그런데 위협 앞에서 내린 첫 반응만큼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위협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위협에 지금의 성공을 걸기를 주저했다. 이 주저함이 반복되는 동안, 위협은 조용히 몸집을 키웠다.
코닥의 역설
코닥은 20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필름 기업이었다. 전성기에는 전 세계 필름 시장의 90%를 차지했고,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코닥 모멘트"라는 말이 따로 생겨날 정도로, 코닥이라는 이름은 사진이라는 행위 자체와 거의 동의어였다.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이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프로토타입을 사내에서 만들었다. 이 발명을 경영진에게 발표했을 때,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기술은 훌륭하지만 필름 사업을 위협한다는 것을, 경영진은 그 자리에서 명확하게 인식했다. 여기서부터 코닥의 이야기는 흔히 상상하는 "몰라서 놓친" 서사와 갈라진다. 1981년, 소니가 상업용 전자카메라 마비카를 출시하며 디지털 이미징의 가능성을 세상에 알렸을 때, 코닥은 이미 내부적으로 이 기술이 10년 안에 필름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분석을 갖고 있었다. 정보는 있었다. 시점까지 계산돼 있었다. 그런데 그 분석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필름 사업이 코닥 이익의 핵심이었다. 필름 한 롤의 마진은 70%에 달했다. 이 정도 수익을 내는 사업을 스스로 잠식하는 결정을, 그 사업으로 먹고사는 조직이 내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코닥은 디지털 기술 개발 자체는 계속했다. 상당한 특허도 보유했다. 그러나 그것이 핵심 전략이 되지는 못했다. 디지털 제품을 만들면서도 적극적인 시장 진출은 계속 늦췄다. 경쟁자들이 디지털로 옮겨가는 동안 코닥의 필름 매출은 2000년대부터 급격히 무너졌고, 2012년 파산을 신청했다. 그 파산은 시장을 몰라서 온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자신의 성공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온 것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코닥의 선택은 "디지털이냐 필름이냐"라는 양자택일이 아니었다. 코닥은 두 갈래를 동시에 붙잡으려 했다. 디지털 기술은 개발하되, 그것을 필름 사업을 대체할 것이 아니라 필름 사업을 보완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절충은 안전해 보였다. 실제로는 어느 쪽에도 온전히 힘을 싣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필름 사업을 지키려는 힘과 디지털로 나아가려는 힘이 조직 안에서 서로를 견제했고, 그 사이에서 시간만 흘렀다. 성공한 사업이 만드는 내부 관성, 성공한 수익 구조에 대한 집착, 성공적인 브랜드 이미지의 경직성이 합쳐져 전환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구조였다. 성공이 쌓일수록 변화의 비용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였다.
성공한 사업이 만드는 내부 관성과, 성공한 수익 구조에 대한 집착이 합쳐지면 전환은 불가능해진다.
5천만 달러, 그리고 거절
블록버스터의 이야기는 더 구체적인 숫자로 남아 있다. 2000년,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를 5천만 달러에 인수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헐값에 가깝다. 그런데 블록버스터는 거절했다. 당시 블록버스터의 CEO는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이 블록버스터의 핵심이던 매장 기반 사업을 위협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몰라서 지나친 제안이 아니라, 알고도 내린 판단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 판단의 방향이다. 위협을 인수해서 내부화하는 선택지가 분명히 있었다. 5천만 달러라는, 당시 블록버스터 규모에서 크지 않은 돈으로 넷플릭스라는 위협 자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블록버스터는 그 위협을 흡수하는 대신, 자신의 성공적인 기존 사업을 방어하는 쪽을 골랐다. 매장이라는 자산, 매장이 만드는 매출, 매장을 중심으로 짜인 조직 구조 — 이것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2010년, 블록버스터는 파산했다.
이 장면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블록버스터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었다는 데 있다. 위협을 인지했고, 대안을 마주했고, 선택을 내렸다. 다만 그 선택이 매번 "지금의 성공을 지키는" 방향으로 정렬돼 있었을 뿐이다. 5천만 달러는 거절할 때는 합리적인 방어처럼 보였다. 10년 뒤, 그 5천만 달러는 그들이 놓친 것의 이름이 됐다.
이 거절이 유독 상징적인 이유는, 그것이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계산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의 경영진은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을 몰라서 거절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델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들의 핵심 사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도 정확히 파악했다. 문제는 그 충돌을 마주했을 때, 충돌을 흡수하는 쪽이 아니라 충돌을 밀어내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매장이라는 익숙한 성공 방식이 있는 한, 그 방식과 충돌하는 새로운 방식에 스스로 자원을 옮기는 결정은 언제나 뒤로 밀렸다.
안에서부터 막힌 전환
노키아는 앞의 두 사례와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준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조직 차원에서 몰랐던 게 아니다. 내부에는 스마트폰의 중요성을 인식한 엔지니어와 경영진이 분명히 있었다. 문제는 그 인식이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 구조 자체가 성공적인 현재 사업, 즉 피처폰 사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미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닥과 블록버스터가 "위협을 알았지만 방어를 선택했다"는 하나의 결정으로 요약된다면, 노키아는 그 결정이 조직 전체에 스며든 경우에 가깝다. 개인의 인식과 조직의 대응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 누군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앎이 자원과 우선순위와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막혀 있었다. 피처폰 사업의 성공이 그 통로를 조용히 좁혀온 결과였다. 결국 노키아의 전환은 늦어졌고, 한때 휴대폰의 대명사였던 이름은 스마트폰 시대의 주역 자리에서 밀려났다.
세 사례 중 노키아가 가장 눈에 덜 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닥에는 지목할 수 있는 발명가와 순간이 있었고, 블록버스터에는 지목할 수 있는 숫자와 거절이 있었다. 노키아에는 지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결정이 없다. 대신 곳곳에서 조금씩 늦어진 판단들이 쌓였다. 어떤 조직에서는 함정이 극적인 한 번의 선택으로 오지 않는다. 매일의 우선순위 회의에서, 이번 분기에도 검증된 사업에 조금 더 자원을 주는 쪽으로, 아주 조금씩 기울어지는 방식으로 온다.
왜 하필 이 셋인가
코닥은 사진의 대명사였다. 블록버스터는 비디오 대여의 대명사였다. 노키아는 휴대폰의 대명사였다. 실패가 일어나기 전, 세 회사는 모두 각자의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공통점은 우연이 아니다. 성공이 깊이 뿌리내릴수록, 그 뿌리를 흔드는 결정도 더 무겁게 느껴진다. 뿌리가 얕은 조직은 방향을 바꾸는 데 잃을 게 적다. 뿌리가 깊은 조직은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 훨씬 더 큰 것을 걸어야 한다.
세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반응 패턴이 보인다. 위협을 인지하는 순간, 조직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지금 성공하고 있는 것을 지키는 일이다. 이 반응에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성공 방어 반사 — 위협을 인지한 조직이 그 위협에 맞서기보다, 이미 검증된 성공을 지키는 쪽으로 먼저 움직이는 경향이다. 이 반사는 무의식적이지 않다. 매 순간 합리적인 계산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지금 이 사업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니 이 사업을 흔드는 결정에는 신중해야 한다 — 이 문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이 신중함이 반복되는 동안, 신중함이 아니라 지연이 쌓인다는 데 있다. 한 번의 신중함은 미덕이지만, 매 분기 반복되는 신중함은 사실상의 결정이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기로 계속 결정하는 것 — 그것이 방어 반사의 실제 얼굴이다.
코닥과 블록버스터와 노키아가 놓친 것은 정보가 아니라 결단이었다.What they lacked was not information. It was the decision to act on it.
이 반사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방어는 매번 작은 승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번 분기 매출은 지켜졌다. 이번 사업 구조도 그대로 유지됐다. 조직은 이 작은 승리들을 근거로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확인한다. 그런데 그 승리들은 누적되지 않는다. 매번 새로 방어해야 하는 방어일 뿐이다. 반면 위협은 누적된다. 오늘 흡수하지 않은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내일 더 큰 몸집으로 돌아온다. 코닥에게는 디지털카메라가, 블록버스터에게는 스트리밍이, 노키아에게는 앱 생태계가 그렇게 돌아왔다. 방어가 쌓일수록 안심은 커지고, 정작 위협은 그 안심의 그늘에서 더 크게 자란다.
세 회사 모두 방어에 나선 시점에는 방어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코닥의 필름 마진, 블록버스터의 매장 매출, 노키아의 피처폰 점유율 — 모두 실제로 큰 숫자였고, 실제로 조직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래서 방어는 감상이 아니라 재무제표에 근거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그 재무제표가 오늘의 그림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위협이 다음 분기, 다음 해에 무엇을 할지는 어떤 재무제표에도 아직 찍혀 있지 않다. 눈에 보이는 숫자와 아직 보이지 않는 위협 사이에서, 조직은 언제나 보이는 쪽의 손을 들어준다.
성공을 지킨다는 말의 두 얼굴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성공한 사업을 지키려는 마음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다. 문제는 "지킨다"는 말이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데 있다. 하나는 지금의 사업 구조와 수익원을 그대로 방어하는 지킴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업이 만들어낸 자원과 신뢰를 다음 위협에 베팅하는 지킴이다. 앞의 것은 오늘을 지키고, 뒤의 것은 내일을 지킨다. 코닥과 블록버스터와 노키아가 선택한 건 매번 앞의 것이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이 선택이 겉으로는 똑같이 "신중한 경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회의실에서는 두 지킴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둘 다 "우리 사업을 보호하자"는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차이는 그 문장 다음에 온다. 지금의 매출을 지키기 위해 위협을 밀어낼 것인가, 지금의 자원을 써서 위협을 흡수할 것인가. 이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고르느냐가, 10년 뒤 그 회사가 여전히 업계의 대명사로 남을지 아니면 대명사였던 이름으로만 남을지를 가른다.
두 지킴을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질문의 대상을 바꿔보는 것이다. "이 결정이 이번 분기 실적을 지키는가"가 아니라 "이 결정이 5년 뒤에도 우리를 지금 자리에 있게 하는가"를 묻는 것. 코닥의 회의실에서, 블록버스터의 회의실에서, 노키아의 회의실에서 첫 번째 질문에는 언제나 좋은 답이 있었다. 두 번째 질문에는 답이 없거나, 답을 알면서도 꺼내기 어려웠다. 회의실이 첫 번째 질문에만 익숙해질수록, 조직은 오늘을 지키는 데는 능숙해지고 내일을 지키는 데는 서툴러진다.
지금 잘 되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이 질문을 던져볼 만하다. 우리가 지금 위협 앞에서 하고 있는 방어는, 오늘을 지키는 방어인가 내일을 지키는 방어인가. 코닥과 블록버스터와 노키아도 이 질문에 답할 기회가 있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답이 요구하는 대가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다른 쪽을 골랐을 뿐이다.
세 회사의 이야기가 오늘의 회의실에도 유효한 이유는, 그 대가의 크기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성공하고 있는 조직일수록, 다음 위협을 흡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더 크게 느껴진다. 지킬 것이 많을수록 놓기가 어렵다. 그런데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성공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대가를 감당할 자원이 가장 넉넉한 시점이기도 하다. 위협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뒤에는, 그 자원조차 남아 있지 않다. 코닥과 블록버스터와 노키아가 공통으로 증명한 것은 바로 이 어긋남이다. 방어할 여력이 가장 클 때 방어를 선택했고, 방어할 여력이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방향을 바꾸려 했다.
They didn't fail to see the threat. They chose to protect what was already working.